Saturday 30 July 2011

Fashion Essay_7:Hitchcock and Actress


1년 만에 다시 찾은 이태원은 불쾌했다. 변심한 애인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한적하고 음악이 좋아 자주 들렸던 라운지는 정원이 다 차서 나를 문전박대했고 소파가 넓어 편안하게 칵테일을 음미할 수 있었던 곳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스톨 의자로 갈아치웠다. 모히토와 마티니가 일품이었던 바는 이제 끈적하게 단 모히토와 까칠한 맛을 잃어버린 마티니를 내왔다. 이제 이태원 밤거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젠체스러운 몸짓과 가식적인 미소로 울렁댄다. 어쩌면 그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던 그 테이블이, 그 음악이, 그 골목길이 다른 사람들로 붐비는 것에 짜증이 밀려와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치 아끼던 물건을 강탈당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이태원은 내 동의도 없이 그렇게 변해버리고 나를 그 모든 추억으로부터 내달릴 것을 종용하는 듯 했다. 그 날밤은 이상하게 취하지도 않았고 귀가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공허했다.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렇게 내 달려 버린 것이 못내 미웠다.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나를 기다리며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현기증을 보시고 계셨단다. 영화는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영화 속 킴 노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단아하게 틀어올린 금발,우아하게 뻗은 목선을 감춘 목폴라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함과 도발이 공존하는 눈매가 여전했다. 60년대 촬영한 영화 속 그녀는 충분히 모던하고 섹시했다. 히치콕 영화 속 그녀들은 한결같다. 14살 에 본 그레이스 켈리가 그랬고 20살에 본 티피 헤드렌도 그러했으며 킴 노박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누군가에 의해 쫓기고 공포에 시달리고 불암감에 동요를 느끼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치에 흐트러짐이 없이 완벽한 모습이다. 어쩌면 그런 점이 그녀들의 매력인 지도 모른다. 마치 발한자국 잘못 내딛으면 허공으로 추락할 지도 모르는 그런 긴장감이 그녀의 정갈함을 극대화 시키기 때문일테다. 하나 덧붙이자면 영화 속 그녀들의 룩이 완벽하게 이 모든 것을 비주얼적으로 완성시킨다. 클래식한 60년대 레이디룩은 21세기에 보아도 촌스러움을 찾을 수 없다. 특히 <새>의 티피 헤드렌의 그린색 투피스와 <현기증>의 킴 노박의 롱글로브와 매치한 화이트 코트는 시대를 초월한 멋이 있다.
그녀들이 무자비한 새에게 쫒기는 와중에 혹은 정신착란을 이기지 못해 바다로 내달릴 때도 나는 그녀의 불안과 공포를 동감하면서도 동시에 저 완벽에 가까운 룩이 다치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남자 배우들이 그녀를 공포로부터 해방시킴과 동시에 저 우아한 옷매무새를 한치에 흐트러짐 없이 지켜주기를 바랬다.
알프레도 히치콕은 여배우들을 괴롭히기로 유명했다. 티비 헤드렌은 실제로 새에게 쪼였고
<싸이코>의 자넷 리는 얼마나 샤워씬을 혹독하게 치뤘는지 다시는 샤워장에 안들어갔다고 한다. 그레이스 켈리는 히치콕을 피해 모나코 국왕과 결혼을 서둘러 치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히치콕은 자로 잰 듯한 플롯과 결벽증에 가까운 촬영과 편집으로도 유명하지만 의상에 대한 까탈스러움도 이에 못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여배우들을 데리고 배역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기 위해 직접 쇼핑에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 여배우들의 패션에 대한 안목을 키우기 위해 쇼핑 중에도 스타일에 대한 코치를 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집착과도 같은 미에 대한 열망 덕분에 그녀들은 영화 속에서 손조차 대기 어려울 정도로 고고하게 눈부시다. 그런 그녀들이 10대에 매료시켰듯이 20대에도 그러했고 앞으로 나의 30대에도 그래 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그래서 정말이지 영화의 줄거리를 꿰고 있으면서도 매번 볼 적 마다 눈을 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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