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0 July 2011
어쩌면,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죠?" 젊은 이브 생 로랑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Pierre Berge."
피에르 베르제는 생소한 이름이다. 사람들은 '이브 생 로랑(YSL)'의 비지니스 파트너 라는 설명을 들어야 그의 이름을 어렴풋이 기억해낸다. 20세기 천재 디자이너로 기록된 이브 생 로랑의 곁을 반백년 동안 지켜왔지만 그는 그렇게 잔잔한 이름으로 회자될 뿐이다.
피에르 베르제는 누군가의 파트너로 살아왔다. 그는 예술과 소수자의 권리와 민중을 사랑했고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후원자였다. 피에르와 이브가 함께 설립한 '이브 생 로랑-피에르 베르제 재단'은 지금도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박물관에서부터 장 지오노 문학상, 에밀 졸라의 집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예술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1987년에는 진보 성향의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프랑수아 미테랑을 지지하기 위해 '글로브' 라는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작년에는 자비에 니엘,마티외 피가스와 함께 자금난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독립신문의 상징 '르몽드'를 인수했다. 편집권 독립을 보장한다는 약속과 함께.
하지만 그의 사랑이 가장 밝게 비췄던 대상은 역시 사진 속 그의 맞은편에 앉은 이브 생 로랑이었다. 피에르는 그의 파트너를 도와 이브 생 로랑을 탄생시켰고 최고의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이브가 마약과 술에 빠져 있을 때도 한결같이 그를 돌보았다. 2008년 암으로 사망한 이브의 장례식에서 그의 눈을 덮어준 이도 그의 연인이자 친구이며 영혼의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였다. 이브의 사후, 피에르는 그와 함께 수집한 미술품 700여점을 경매에 올렸다. 경매 수익금 6천억은 에이즈 재단에 전액 기부되었다.
누군가의 파트너로 역사에 기록되는 인물이 있다. 유방과 함께했던 장량이 그렇고 루스벨트의 참모였던 루이 하우가 그렇다. 그들은 배우가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무대이자 조명이었다. 피에르 베르제의 이름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뜨겁게 기억된다.
루엘 유민석 피처 어시스턴트
그래서 내가 이브 생 로랑 옷을 보면 감격스러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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