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1 April 2011

Fashion essay-6: scarf


아, 순간이여. 이대로 멈추어라. 그만.

봄이 왔다. 런던의 겨울은 살갗을 에리는 바람 때문에 보내기 힘들기보다 지난하게 추적거리며 내리는 비와 야속하게 빨리 찾아오는 어둠때문에 마음이 적막해져서 괴롭다. 겨우내 늘 해를 가린 먹구름에 축축해진 마음을 널어둘 곳이 없어 봄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나보다. 요즘 나만 당연시 오는 봄의 방문을 채근한 것이 아니였음을 거리를 걷다보면 느낀다. 주말에 소호나 노팅힐을 걷다보면 까페 문밖 의자들은 어김없이 누군가의 차지다. 모두들 아나보다. 햇살내리쬐는 날 거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거리소음과 화음을 이루며 들리는 상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정답고 한결 가볍고, 화사해진 사람들의 옷차림이 주는 감동과 이웃레스토랑의 빵내음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보다 일찍 봄이 찾아온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아무래도 쇼윈도우가 아닌가 싶다.
고백하건데, 나는 정말이지 올봄의 도래가 조금은 두려웠다. 2011년 봄여름 컬렉션은 말 그대로 오색찬란형형색색이었다. 이 시각적 충격이란. 심지어 핑크색과 라이트블루의 깔맞춤 수트라니 이거는 납득이 안되었다. 물론 결단컨데 나는 트렌드세터도 아니요 패션니스타 추종자도 아니다.하지만 블랙과 소위 엣지한 라인을 신봉하는 나로써는 이 모든 것들이 경거망동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다. 정작 봄이 오니 마음이 동하더란 말이다. 나는 마네킹이 걸친 핑크색 스커트가 벚꽃만큼이나 화려한 청순미가 있고 옐로우 탑을 보고는 레몬에이드만큼이나 상큼달짝하면서 톡 쏘는 맛을 느꼈고 살짝 걸친 블루 가디건에서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면서 느꼈을 법직한 청량함을 맛봤다. 그래서 결국 과감한 에스닉 패턴에 깃털을 덧댄 데님 자켓을 사버렸다. 그리고 여기에 블루프레임의 선글라스를 끼면 정말이지 내가 비로소 봄의 방문에 부응을 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늘 식상하게 이 데님자켓을 입고 싱그러운 미스터 스프링을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장 수고롭지 않은 방법은 아무래도 무심하게 그리고 아리따웁게 봄바람에 살랑일 수 있는 스카프를 목에 슥 두르는 것일테다.
개인적으로 스카프만큼이나 봄다운 아이템이 있을까 싶다. 꽃내음과 함께 불어오는 바람에 살포시 나부끼는 그 유려한 흐름과 쏟아지는 햇빛에 투과되어 보이는 색상은, 봄이 몰고온 심리적 파동과 시각적 유흥을 그대로 담아낸다. 펄럭이는 스카프는 세상의 중력을 거부하는 듯 싶고 수평으로 흐르는 움직임은 미묘하게 어지럼증을 불러일킨다. 이것이야말로 봄바람 난 처녀의 그 심적 파동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나른함, 이 알랑이며 콧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야릇함말이다. 그리고 눈을 감아본다. 먼 곳으로부터 오는 선적의 돛대와 향수를 가득담은 깃발과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여인의 긴 머리카락같은 것을 말이다. 다시 불어오는 바람에 숨을 들이쉬어 본다. 미세한 터치의 쟈스민,라일락 그리고 체리블로섬이 알싸하게 콧끝을 훔치고 내달린다. 곧 흠칫 눈을 뜬다.
불현듯 옛날에 엄마로부터 들은 기묘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주 아름다운 무용수가,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그녀가 두른 스카프가 말려서 그만 그녀가 질식사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말이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비극적이라는 느낌보다 비현실적이고 우습다라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다. 대게 죽음은 장엄하고 엄숙하여서 살아남은 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지 않은가. 오픈카를 타고 젠체하게 스카프를 맺는데 질식사라니 이거는 너무나 초현실적이다. 나는 이상하게 그녀의 허세가 초래한 드라마틱한 실수같았다. 13살 봄, 미술수업 중에 나는 너무나 이 이야기 속 ‘그녀’와 다른 이사도라 던컨 Isadora Duncan을 만났다. 그녀의 춤사위는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스카프만큼이나 미려하고 우아하고 가벼웠다.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그녀는, 발레리나의 육체를 옭아맨 토슈즈와 뛰뛰를 버리고 맨발로 그리스 여인의 토가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 너무나 ‘신화’적 mythological이었다. 파격적이면서 클래식했다. 동시에 그 기이한 사인이 동시에 ‘신화’ myth같았다. 무게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새털같은 죽음이어서 실소조차 나왔는데 무용역사의 남긴 그녀의 발자국은 반대로 너무나 선명 했고 무게감은 엄중했다. 그녀의 기이한 사인을 13살의 나는 친구들에게 가십처럼 이야기했다. 27살(만 25살이다..25살이다!)의 나는 그녀의 죽음을 그때와는 다르게 바라본다. 물론 나에게 닥치면 이성과는 무관한 감정의 격한 동요를 느끼겠지만 분명 죽음은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감한다. 봄처럼 그렇게 훅하고 와서 봄날의 그 정취를 휙하고 앗아가듯 가버릴터이고 바람에 풀려버린 스카프만큼이나 그렇게 속절없이 내 발걸음과는 무관하게 내달려버릴테임을 안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아직은 그런 모든 것들이 두렵고 애닳고 회피하고만 싶다. 그 일시성, 가망없음 그리고 찰나의 순간성같은 것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늘 영원을 꿈꾸고 완전성을 추구하고 착각같은 완벽한 발현을 염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나는 스카프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면 눈물이 날 거 같다. 그렇지만 운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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