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19 March 2011

Fashion Essay_5: Over-sized Sunglass

우리 눈으로 말해요

나는 대체로 내색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숙쓰럽다.그리고 지나친 감정의 노출은 부적절한 공감을 강요하고 비논리적 판단을 유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유별스러운 것, 호들갑 떠는 것, 주체하지 못하는 것을 멀리하고 가장 두려워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런 원초적 표현이 지닌 저돌적이며 우발적인 측면이 견디기 어렵다. 그렇다. 나는 흥분에 들떠 어젯밤 일어난 일을 털어놓거나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거나 코미디쇼를 보고 배가 아파라 웃지 않는다. 물론 아주 때로는 박장대소,발연변색, 감개무량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대체로 무심한 척 하고자 한다. 하지만 포커페이스 혹은 감정 컨트롤로도 감출 수 없는 게 있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것 말이다. 눈빛이다.

칼라거펠트, 안나 윈투어, 왕가위 이 세사람을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선글라스 애용가라는 점이다. 심지어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그들의 태도는 납득되지 않는다. 오만방자해보이기조차 하다.일단,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아뜰리에서도 런웨이 프론트로우에서도 실내촬영 중에도 새까만 안경을 끼고는 무언가를 관찰하거나 응시하거나 지켜본다. 그들은 철저히 시선의 주체이다. 존 버거가 언급한 응시자의 권력, 히치콕의 관응적 시선 혹은 퓰리쳐 수상작가들의 직업적 포착 속에서 우리는 객체를 바라보는 그 시선들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조용히 막 뒤에서 렌즈 뒤에서 선글라스 뒤에서 대상물을 음밀하게 탐하는 주체가 존재함을 인지할 수 있다. 이 세사람들은 선글라스를 착용함으로써 시선의 자유를 보장받았을 뿐만 아니라 눈을 감춤으로써 타인이 자신을 해석할 수 있는 수단을 차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물을 객체화시킬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되었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그 어느 여름 날, 나는 가장 아끼는 2004년에 출시된 디올옴므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이 선글라스는 유독 렌즈의 투과율이 낮아서 상대방이 나의 시선을 정말 알아채기 어렵다. 물론 관음증적 시선을 즐기고자 이 선글라스를 지금도 애용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프레임 크기와 로고장식이 없는 베이직한 디자인의 올블랙 보잉선글라스는 어느 곳에도 어울린다. 게다가 그 케이스는 정말 나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에디슬리먼의 철학이 묻어나는 간결하고 샤프한 케이스는 자켓 포켓안에 넣기에 알맞았다. 기존의 둔탁하고 운거에 수고로움을 요하는 케이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튼, 나는 그 날 선글라스를 끼고 맞은 편에 앉은 ‘이’를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알았다. 이 관음증적 시선의 쾌락을 말이다. 함께 노천까페에 앉은 ‘이’를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마시고 입안에 굴렸다가 기도로 넘겼다. 스트롱을 살포시 물은 입술을 보다 그 입매무새를 고쳐보고 커피를 들이키려 살짝 패인 볼에 감탄하다가 유려한 턱선에 시선이 고정된다. 그러다가 다시 턱선을 따라 목선을 훑어내린다. 까만 막을 방패삼아 음미하고 감탄하고 동공에 담는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다. 대화가 오고간다. 그렇게 눈을 보고 얘기하다가 새로 알게된 내밀한 취미를 즐기기로 한다. 말보다 더 많은 말을 전하는 짙은 갈색 눙동자가 담은 알 수 없는 수심에 잠깐 취해본다.그러다 눈썹의 가지런한 곡선에 눈길이 간다. 이내 마음도 눈썹 봉우리를 넘다 춤을 춘다. 다시 콧날을 따라 유려학게 미끄러져 다시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느라 도톰해진 입술에 홀딱 정신을 잃어 버렸다. 카메라는 찰칵하면 그만이지만 눈은 깜빡하고 나면 잊어버리기 쉽상이서 보고 또 보지 않으면 잃어버린다. 찰라의 순간을. 게다가 늘 인지적 작용에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윤곽이 남는 것이 아니라 미사여구가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 이 언어의 무력함과 상투성이란, '형언할 수 없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와닿는다. 차라리 마음에 넣고 혼자 몰래 꺼내보는 편이 낫다.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선글라스를 벗지 않았다. 나는 정말 내 눈빛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감정을 표현하고 때로는 무심한척 굴어도 진심으로 이 눈빛은 내 능력밖의 일인듯 싶다. 그래서 도리어 나는 눈빛을 믿는다. 나는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이의, 무언가에 홀린 듯한 이의, 무언가에 심취해 있는 이의 그 눈빛으로부터 그 어떤 신앙과 같은 진정성을 느낀다. 진실을 상실해 가는 이 세상에 절대적 고결성이 아직 남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믿는다. 그래서 진심을 터놓고 얘기하고자 하면, 우리 선글라스를 벗자. 어디 선글라스 뿐만 이겠는가. 그대의 마음의 문도.

No comments: